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see List1910년 나라가 망하던 해, 조선 최고 명문가 이회영 6형제는 현재 가치 약 2조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처분하고 60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습니다.
그들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독립군 3,500명을 양성했고, 이 군인들이 훗날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됩니다. 그러나 6형제 대부분은 가난과 고문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. 그 결말이 소름 돋습니다.
이시영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이 되었고, 이회영은 1932년 중국에서 일제에 붙잡혀 순국했습니다.